• 대학원생은

    0. 마법사의 제자

     

    1. wet lab 다니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이 이런 것 같아서.

    선배와 교수의 내공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자신도 하나하나 비급과 무공을 익혀나가고, 그러다 사고치고 ㅡ.ㅡ
    동물실험 라이센스를 받기 위해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처음 쥐를 다뤄보시는 듯한 분을 옆에서 보며 내가 1년 반 새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배우긴 했구나, 역으로 내가 분자생물학 실험실에 떨어지면 저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함. 줄기세포가 분화하듯 내 fate도 점점 좁혀져 가는 것인지.

    2. 갑갑한 기분

    실험은 적당히 잘 됐고 투입대비 산출성이 낮아보이는 관문을 앞두고 하차하게 될 것 같다. XXP30X을 사용하는 짜투리 실험을 준비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이정도면 전기생리학에 있어 내 기술이 충분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숙련됐음을 알게됐다. 어영부영 한 것 치곤 나쁘지 않은 석사 1년이었나보다. 문제는 ‘무슨 질문을 던질지’라는 내 아카데믹 커리어의 최초의 분지점에 곧 닥치게 될 것 같다는 것인데. 이게 좀 두렵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고싶다. 그러면 망하지. 아니, 이런 인간이 애초에 대학원을 들어오면 안되는 거였는데, 허영만 들어차서는 ㅡㅡ; 어쨌든 빛을 향해 갑시다. 진짜 “과학”을 하는 동안에는 어떤 열의와 욕망도 저열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안심이다. 매드사이언티스트마저도 그가 수식을 적어내려가는 모습만큼은 아름답다. 돈버는거나 여자꼬시는거, 혹은 정치하는거. 그런 삶의 다양한 장면들과는 달라 캬캬

    대학원은 그정도고, 사실 정말 갑갑한건 음악 부분. 내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인간인가, 얄팍하게 살아온 인간인가. 그렇지 않다며 스스로 속인 여태까지의 시간들이 너무 아깝ㄷ…까진 아니지만, 괜히 나와 관계한 사람들을 탓하고 욕하는 중. 내가 애초에 모자란 깜냥이었다는 결론만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그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것 또한 자꾸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문제들.

     

  • 시유 유감 + 티아라 유감

    0-0
    졸리므로 트위터처럼 신속하게 쓰겠음

    0-1 .
    7.27 일에 생각을 떠올리다.

    트위터에 대충 생각을 썼으므로 별로 풀리지도 않는 생각 풀어내지 않겠다.

     

    0-2. 티아라를 테레비에서 본 적은 별로 없다.

    테레비를 안좋아하므로. 대신 야동은 좋아하지. 그래서 티아라라고 찾아본 계기는 멤버 지연 몸캠과 화영 젖꼭지 노출장면을 보고싶어서 잠시…정도였다. 그외에는 보핍보핍이란 노래를 불렀다는거 정도? 한 두어번 일부러 찾아들었던 것 같다.

    1. 그래서 걔네들이 어떤 인간성을 가졌는지

    테레비 예능에서 드러나는만큼도 모르고, 그냥 아 멤버 하나가 옛날에 일진이었나보더라, 몸캠하고 다니는 발랑ㅋ까진ㅋ꼬마였다더라 카더라로 아는 정도였다.

    2. 그런 발랑 까진 애들에게 동경이 있었다.

    나는 못겪어본 화려한 청춘ㅋ이고. 바닥을 친만큼 지금 정상에 섰을때 인간의 깊이가 있지 않겠느냐는 어림짐작이었다. 아닌 모양이다. 정상의 자리에 올라놓고도 양아치시절 똑같은 마인드더만. 오아시스가 개드립치는거랑 다르다. 티아라 멤버들, 근본적으로 품성이 닦아지질 않은것 같다.

    여튼, 그 대단한 청춘사가 더 넓고 유연한 사람을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안되었다는 사실에, 다소간 실망함.

  • 모두들 자니?

    0. 간만에 휴일인 어린이날이 있어,
    토요일 신나게 놀았다.

    느즈막히 일어나 자전거타고 필사의 업힐과 함께 실험하러 학교갔다 서너시간 일하고 퇴근. 퇴근길은 도림천을 따라 안양천-한강길-여의도로 해서 30km짜리 루트로 돌아서 옴. 덕분에 피부가 다 타버렸다 으앙;

    1. 그렇게
    휴일을 만끽하는 사람들 구경, 풀밭 구경, 연인 구경, 바람과 해를 맞으니 정말 정신이 맑아지고 삶이 기뻐지는 순간이 왔다. 이게 사는거지ㅠㅠ; 저녁엔 모리 카오루의 만화를 읽게 됐는데 정말 최고였다. 신부이야기 같은 경우엔 페이지마다 튀어나오는 새로운 풍광과 문화에 가슴이 벅차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정도였다;;

    2. 그렇게
    기쁘고 난 다음날 교회가기 전에 뚝딱 녹음해놓고, 교회와 실험을 마치고 돌아와 대충의 마무리를 지어놓은 노래가 이것이다.

    Audio MP3

    모두들 자니? 일 나갈 시간/얼른 서둘러서, 교대할 시간/달도 없고, 희미한 별빛/밤바람 차다. 옷들 껴입자//..//
    가로등 꺼진 길 지나, 고장난 신호등 건너서,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가자, 가자/구름이 걷히고 달님 지나간 자리에서 찾는 나의 별/호주머니 빈자리 찾아서 야무지게 갈무리 하고//

     

    토요일 밤 자기 전에 기타치며 흥분하며 놀았는데, 그때 김민기 책을 펼쳐놓고 가사만 훔쳐다 만든 메모를 토대로 뚝딱 만듦. 다른사람은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는데, 스스로는 내가 이런 노래도 만들 수 있었나 싶을정도로 방긋방긋 화사해서 놀랐다. 헤헤…;

    3. 그러므로
    사람이 좀 놀아야 산다는 것입니다.

  • 괴도 세인트 테일

    0. 네티앓이에 고생한 한주였다.
    제대로 장문의 리뷰를 할까 했는데 다른 일도 많고 해서 초안 쓰던것만 기록해두기로 한다.

    1.1 정통 순정만화다.
    말괄량이 여주인공과 둔감한 남주인공의 츤데레 vs 츤데레. 캬 이래야 연애 구경하는 맛이 있지.
    서로 반하게 된 계기- 세인트테일은 최초엔 그저 즐거웠기에 술래잡기를 시작. 아스카도 마찬가지.  남자애 답달지, 일직선으로 세인트테일만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 어머 세인트테일은 반한다.

    1.2 소년, 소녀
    고전적인 소년상과 소녀상. 성장의 속도가 살짝 어긋나 있다가 따라잡히는 중학생 나이. 아스카는 세인트 테일을 잡는다는 마음, 독차지하겠다는 마음이, 두근거림이 있으면서도 그게 뭔지 잘 모르는 혈기방장 남자애. 아주 약간 더 어른스러운 메이미는 데이트도 신청하고, 리나를 질투하기도 하고. 나를 잡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카 너로 해줘. 라고 얼굴 붉히며 고백도 하지만! 부끄러워서 이라이라 풍풍거리기만 함. 그렇게 도시를 무대삼아 밤마다 나 잡아봐라 하고 연애질하는 와중 가끔 세인트테일이 아닌 메이미의 모습으로 가끔 두근두근한 일들. 두근두근한 말들로 그녀의 마음은 두근두근! 뭐, 정말 소녀적인 정도로 얼렁뚱땅 데이트 신청도 해보고,  얼렁뚱땅 데이트도 하고

    1.3 어느 순간
    아스카도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고, 세인트 테일=메이미라는 심증이 아스카에게 조금씩 싹틀무렵, 정말로 아스카에게 잡힌다면? 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메이미. 그리고  소년이 여물어 남자애가 된 아스카는 세인트 테일을 향한 마음, 그리고 세인트 테일을 닮은 메이미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게 됨.

    1.4 클라이막스, 엔딩
    옴모머머머 -//-

    2.
    기독교적 코드. 기독교적인 용서의 정서가 기반에 있음. 많은 의뢰인들은 회심한 죄인들이고, 괴도 루시퍼도 몰래 물건을 돌려놓는 외엔 딱히 죗가를 치르진 않고, 그 고해에 답하는 신의 용서를, 대리자 세인트 테일을 통해 확인함. 세인트 테일=메이미의 정채를 고백하려는 메이미를 다 알기에 용서한다는 말을 해줄때 아스카의 대사 신께서 보고 계셔. 모두 알고있어. 그리고 죄사함을 입은 메이미의 눈에 비친 십자가. 가지버섯랜드와 비교되는 부분인데ㅋ 기독교적인 코드가 가장 왜곡되지 않은 일본작품이 아닐까 생각함.

    2.1
    수사하는 방법도 그렇고, 루시퍼의 회심도 그렇고, 악당들 외엔 딱히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팍팍하지 않다면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않네요. 사적인 해소만 이루어지는게 20세기의 정서인가 싶음.

    3.
    고전 순정만화답게 미묘한 호흡과 생략된 디테일이 눈에 보임. 기껏 만들어놓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다수가 일회용. 3쿨급 길이에 2쿨 구성, 그리고 10화정도는 시간끌기 에피소드. 아스카의 천재적임이 많이 가려짐. 별로 변신물 요소에 세인트테일은 아예 이능력자로 묘사. 고맙고도 촌스러운 건 종반부 시리어스함에 짓눌리는건 원하지 않는다는 듯한 제작측의 배려.

    4.
    요즘 애니에선 아무래도 상업적인 면을 의식해서인지 연애 라이벌은 사실 잘 안등장하지 않나 싶은데… 남성취향이면 서브히로인 잔뜩, 여성향이면  서브히어로 잔뜩. 하여간 꽃보다 남자와 러브히나 쥬거라.

    5.
    이나이에 이런거나 보고 설레고 로맨스를 꿈꾸는 나는 역시 글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6.
    그리고 십만원도 넘게 주고 일본 옥션 대행으로 세인트테일 셀화를 구하고 있는 나였습니다.

  • 더 퍼스트 마인드

    0. 처음으로

     

    설계한 실험이 예상대로, 통계적으로 의미를 갖는 결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이 일을 시작한게 작년 겨울이었으니, 반년 쯤 걸린 셈이다. 앞 넉달가량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벚꽃이 만개했다 허물어진 5주간 스무마리 가량의 쥐를 희생시켜 쌓은 데이터가 저것이다. 시행착오 한 걸 제하고도 쥐값으로 30만원, 시약 값으로 150만원, 월급은 75만원 가량일텐데, 난 이걸 왜 계산하고있는거지;

    1. 초심

    NO MORE WOR-K -8- “yuxy.com”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초심이 늘 아름답지만도 않고, 늘 처음처럼 한다고 잘 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내 대학원생활도 사실 매우 의욕없이 시작했거니와 말이지. 그때 그 마음가짐으로는 백년 대학원에 붙어있어도 졸업은 못했을 것이다ㅋ.
    그렇다고 지금의 마음가짐은 교정되어 바람직한가? 아니다. 일에 능숙해지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내고 무엇을 얻어나가야하는지 견적을 볼 수 있는 경험을 갖추고, 그에 따른 책임과 기대를 지게 되며 점점 실험실의 생활은 고되어져간다. 그러다보니 참 로또나 맞고 그만 둘 궁리를 해야하나 하는 망상이 불쑥불쑥 솟구치고, 이전에는 없던 대우에 대한 불만, 동료들을 향한 없던 미움과 깔보는 마음도 생겼다. 좀 익은 그만큼 썩은 셈이다.

    2. 데이터.

    토요일 오후, 나른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늘 그렇듯 아름다운 벚꽃길의 풍경과 교환해 얻은 나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담배를 한대 태웠다. 데이터를 그냥 통계 프로그램의 화면으로 볼땐 몰랐는데, 저렇게 논문 형식에 맞출 준비를 해서 인쇄해보니 약간 감회가 있었다. 충실감, 기쁨, 만족감-과는 좀 다른 종류의 기분이었는데, 여기에 무슨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다만, 때때로 이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삶은 불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릴 스쳤다. 벌써 그게 무슨 기분인지 정리가 안되고 가물가물하니 좀 글렀나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