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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1.  미국 에서 영어공부하던 시절.

구체적으로는 하버드 써머 스쿨에서 영어공부하던 2009년 여름. 언젠가 공부하다  secular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영한사전엔 ‘세속적인’ ‘속계의’ ‘비종교적인’ 뭐 이렇게 나오는 말이며, 보통 한국인이 영단어 외우는 류의 학습을 할때는 앞쪽의 의미로들 외울 것이다. 굳이 1:1로 매치하라면 secular는 세속이란 말이 된다. secularism, secular state  -> 세속주의, 세속국가를 보라. 음, 이러한 학문적 역어가 있는걸 보면 아예 세속이란 표현을 일본에서 수입해온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나로선  확인해볼 길은 없다.

여하튼, 클래스의 한국인들은 이 단어를 듣고 돈을 밝히는(?) 속물적인 군상을 연상했다. 이들은 대다수 모모의대 예과과정에서 학교 지원을 일부 받아 어학연수를 온 친구들인데, 내 기준으론 영어도 영 그렇고 교양도 영 그렇지만(캬캬 이 더러운 샤부심) 얘네들이 왠만한 한국의 대학생보다 무식한 애들은 아닐 게다. 똑똑한 애들이지. 그래서 똑똑한 한국인은 세속적이란 말을 풀어서 단어를 설명하기를 그 연상한 바대로 했다. 유럽애들은 한국애들과 달라 주로 미국의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로서 영어를 배우러 온 고등학생들인데, 종교국가에서 세속국가로 전환한 그네들의 역사정도는 배웠을테니, secular가 그네들에게 어떤 의민지 대충 배웠을거다. 그래서 걔들은 한국애들의 말을 듣고 띠용…. secular세속적이란 말이 어떻게 그런 뜻을 갖게되는지 이상히 여겼다. secular는 교회 안나가고 기도 안하는 종교가 없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말이거덩. 한국인들의 이미지에 아무리 가깝게 그려봐도 교회 안나가고 기도 안하고 하늘에대고 빠큐하는 망나니 정도지, 속물이랑 종교적이 아니란거랑은 별로 상관이 없는걸…

왜 secular란 단어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널리 쓰이자 비종교적이란 느낌에서 속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걸까? 추측컨대, 서유럽의 지성사와 동아시아의 지성사 (마침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이라는게 미학적인 구조로구만.. 캬캬)가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는바 공부한바 별로 없어 이것저것 인용해다 설득력있게 쓰질 못한다만, 백인들은 중세를 거치며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정치, 인간 이성을 지난한 투쟁을 통해 구해낸 이들이다. 신의 지엄한 계율 없이 도덕이 가능하고 인간과 인간이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데 퍽 많은 사람들이 모가지가 달아났거나,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러워해야했다. 유럽인들에게 세속으로 내려옴은 몽매한 종교적 비이성으로부터 찬연한(…) 진리의 세계로의 탈출이었다. 너무 공격적인가? 기독교란 정신적 유산과 요람에서 잉태된 세계관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요람과 유산더미를 박차고 튀어나온 곳이 세상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교회가 잘 못나가는거고, 한국에서 유럽인들은 교회도 안나가요 ㅠㅠ 교회도 다 망해요 ㅠㅠ 이러면서 불쌍하다고 선교한답시고 깝쳐도 잘 안먹히는거고.

동아시아에서 세속으로 내려옴이란? 글….쎄 내가 동아시아인임에도 동아시아 학문에 과문한지라 그냥 교과서에서 읽었던 옛날 사상가들의 단편을 통해 재구성한 썰이지만, 도선사상, 선비정신에서 홍야홍야하다가 문득 들이닥친 서구 문물에 개박살나며 저잣거리로 내팽개쳐진 곳이 세속이 아니었을까싶당. 아 왜 있잖아 딸깍발이 선비니, 독야청청이니 vs 세상의 홍색 먼지 어쩌고 줄줄. 독자들은 대충 무슨 의민지 아실 것이다. (내가 모른단 뜻이다.)

한국에서 종교가 부끄러운줄 모르고 세속적…아니, 속물적인 방식으로 팽창하는 것. 유럽에선 미친 종교신자가 해당 선거구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개드립을 치지 않는 것. 반대로 한국에서 온갖 기독교 요지경이 펼쳐지는 것. 동아시아에서 종교성을 극복한 지성사가 없기 때문이란 것.

2. 그건 그거고. 다른얘기.

나도 어디서 잘먹히는 좌파블로거들처럼 간지나게 정치경제학적으로 이땅의 수구세력과 그 정책들을 비판하는 씨뻘건 논평을 좍좍 싸고싶은데…  능력도 없고 그러다보니 의지도 없고 공부도 안하고 에헤헤…..

공부한게 없으면 내가 산 삶, 내가 본 삶이라도 슥슥 그리는 정도는 하고싶은데, 또 내가 뭘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봤어야지 세상이 그려지지. 문제의식도 당연히 공부를 해야 길러지는 지점이다.

내가 참 게으르게 살았구나, 5년의 학부생활이 헛되구나 싶어서 많이 부끄러운 요즘이다. 낭중지추랬다. 튀어나와본적 없이 난 그렇게 돼지처럼 살다가 죽을거야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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