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울며 기도했던 기억

0.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던 걸음중에 문득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울며 기도했던 기억. (사실은 뒤로도 몇 있겠지만, 내가 언제 어떤 기도를 했는지 기억나는 장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때문이리라) 2008년 3학년에 제주도로 갔던 CCC 수련회에서였다.

마지막 저녁이었고, 자리를 계승한 새 총재는 여느때와 같이 베스트셀러 책 이야기로 운을 떼며 성공과 승리,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손에 쥐어지길 원하는 신에 대한 설교를 했다. 주의 청년들이 이 땅에 바로서게 하시고, 어쩌고, 운 운. 그리고 통성기도모드 돌입.

나는 무리에서 약간 떨어져가던 찰나, 왠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순원에게 뭐라뭐라 편하게 있어도 된다, 모두가 저런 분위기에 취해야만 하는건 아니다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해줬다. 무슨생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 없던 그 남자애는 귀엽게 미소만 지어보였다. 뭐 대충 이정도면 신입생 케어는 잘 한거겠지, 하고 내 기도를 하려는데,

그다음 내 눈에 찼던 모습, 운집한 수만명의 기독교인 대학생들이 눈물흘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엄청나게 비통한 기분이 차올랐다. 신이여, 왜 저들은 저들이 들은 메시지의 허망함을 모르고, 그것이 신 당신의 본체인양 붙들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까. 저들이 지금 들은대로 생각하고 떠들고 있다면, 열정의 길은 분명 주님의 길이 아닙니다. 이 뒤틀림을 고치소서!…뭐 이런 느낌?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정말 멀리서도 마른 열기가 느껴질 것만 같이 눈부셨고, 그 빛을 향해 기도하는 군중들의 모습에 자꾸 가슴이 절절했던 것이다. 그당시 나의 언어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국민성공의 시대, 작은 이명박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정도의 감상. 나도 참 오만했지만, 그때 그것이 그닥 틀린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다. 총재님은 그런 분이고, CCC도 그런 곳이었지 않았겠나.

그 순간이 CCC와의 정신적인 결별의 시작이었겠지. 이듬해 난 제국에 영어를 배우러 떠났고, 돌아와서는  교지에 포집됐다.

 

1. 처음에 교지에 들어갈때 쯤엔 이런 이야기들을 풀고싶었던 것 같다.

모태신앙에서, 무신론자로, 순식간에 낯설어진 교회의 관습과 그로부터 자유로워졌단 해방감. 그리고 그때의 대비감 덕에 잠시 날카로워진 교회와 종교의 면면. 하지만 교지는 딱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싶어할만한 이유가 없었을거고, 나도 그거 말고 다른 관심사에 젖어버려 교회 이야기를 풀 새가 없었다….랄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내공이 모자라 뭐 이야기로 풀어낼만한 껀지따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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