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마인드

0. 처음으로

 

설계한 실험이 예상대로, 통계적으로 의미를 갖는 결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이 일을 시작한게 작년 겨울이었으니, 반년 쯤 걸린 셈이다. 앞 넉달가량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벚꽃이 만개했다 허물어진 5주간 스무마리 가량의 쥐를 희생시켜 쌓은 데이터가 저것이다. 시행착오 한 걸 제하고도 쥐값으로 30만원, 시약 값으로 150만원, 월급은 75만원 가량일텐데, 난 이걸 왜 계산하고있는거지;

1. 초심

NO MORE WOR-K -8- “yuxy.com”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초심이 늘 아름답지만도 않고, 늘 처음처럼 한다고 잘 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내 대학원생활도 사실 매우 의욕없이 시작했거니와 말이지. 그때 그 마음가짐으로는 백년 대학원에 붙어있어도 졸업은 못했을 것이다ㅋ.
그렇다고 지금의 마음가짐은 교정되어 바람직한가? 아니다. 일에 능숙해지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내고 무엇을 얻어나가야하는지 견적을 볼 수 있는 경험을 갖추고, 그에 따른 책임과 기대를 지게 되며 점점 실험실의 생활은 고되어져간다. 그러다보니 참 로또나 맞고 그만 둘 궁리를 해야하나 하는 망상이 불쑥불쑥 솟구치고, 이전에는 없던 대우에 대한 불만, 동료들을 향한 없던 미움과 깔보는 마음도 생겼다. 좀 익은 그만큼 썩은 셈이다.

2. 데이터.

토요일 오후, 나른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늘 그렇듯 아름다운 벚꽃길의 풍경과 교환해 얻은 나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담배를 한대 태웠다. 데이터를 그냥 통계 프로그램의 화면으로 볼땐 몰랐는데, 저렇게 논문 형식에 맞출 준비를 해서 인쇄해보니 약간 감회가 있었다. 충실감, 기쁨, 만족감-과는 좀 다른 종류의 기분이었는데, 여기에 무슨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다만, 때때로 이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삶은 불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릴 스쳤다. 벌써 그게 무슨 기분인지 정리가 안되고 가물가물하니 좀 글렀나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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