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포스트 하나 옮겨온다.

-1. 어딘가에 반쯤 자기과시욕으로 만든 일깃장에 올렸던 글이다. 매일 조회수도 체크하고 했었지. 나도 참…

게다가 퍽 마음에 든 이야기였는지, 교지 싸이클럽에도 올렸다. 참 별거 아닌 글인데 괜히 설레서는;
그래도 뭔가 다른사람에게 재밌게 읽힌 글이었던 것 같아서 남겨두기로 한다. 한번 죽 읽으면서 쪽팔린 김에 글도 존나 뜯어고치기도 했다. 후후…

 

가르세인지? 가스레인지;

20100711 2337

0.
제목에 가스레인지를 치다가 오타가 참 우아한 모양으로 났길래 보존해둔다.

1.
이사를 했다. 작은 집이다. 지금 쓰는 가스레인지는 이사오기 전전날 어머니와 함께 방문한 이마트의 가전코너에서 산 것이다. 원래 집에 있던 가스레인지는 불 나오는 구멍도 네 개에다가 그릴도 달려있는 아주 근사한 물건이었지만, 집에 입주했을 때 제공된 가구이기에 두고 와야만 했으니, 그렇게 새로 가스레인지를 사게 되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2.
새로 가스레인지를 사기 위해 고려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좁은 집에 살 예정이니만큼 크기는 작은 것(불구멍은 둘로 족할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 사용하기 위한 것이므로 세척하기 간편할 것.

첫째야 뭐 당연한 얘기고, 두번째 이야기는 이런 거다. 가스레인지 하면 좀 구식이 되어서 불구멍이 날로 여럿 복잡한 모양으로 숭숭 나 있는 형태의 80년대스러운 물건이 있고, 가스가 슬릿을 따라 나오며 위에 맨질맨질하고 둥그스름한 검은 철판이 한장 덮여있는, 비교적 최신식의 형태가 있다. 후자의 물건이 청소에는 월등히 간편하다. 국물이 조금 흘러 졸아붙어버려도, 조금 긁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작은 구멍이 여차하면 음식 찌꺼기에 막히는데에다, 달리 화구 부분을 분리하기도 쉽지 않아 한번 녹이 슬거나 때가 끼어 지저분해지면 그 처리가 말도 못하게 귀찮다.

그렇게 가스레인지를 사기위해 간 이마트. 그리고 우리의 심모원려를 통해 정한 우리의 쵸이스를 가전코너의 판매원에게 전달했고, 결과적으로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치밀하고도 정교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생각치 못한 지점이 두 개 더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새로 이사를 가는 집이 도시가스LNG를 사용하는 집인지, LPG를 사용하는 집인지를 미리 알았어야 가스레인지를 고를 수 있었다. 두 가스는 메탄, 에탄, 부탄 프로판 등의 배합비가 다르고, 그래서 가스레인지의 설계도 서로 호환되지 않을 정도로 달라, 이걸 모르면 불구멍이고 뭐고 가스레인지를 살 수가 없다. 뭐, 이것은 기계적인 문제이고, 정말 재밌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청년 판매원의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우리 말대로 저 맨질맨질한 것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청소에도 용이할 수 있는 반면, 불이 나오는 면적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혼자 살면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주로 작은 냄비에 김치찌개, 작은 냄비에 라면, 작은 냄비에 기타 등등 사람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게 마련인데, 저 넓은 불길에 일인분의 작은 냄비를 올리면 종종 냄비의 그릇부분보다도 손잡이에 더 불길이 많이 가고, 그것이 오래 쓰다보면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3.
해서 일단 도시가스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쪽을 사고, 나중에 혹 글렀으면 환불을 하기로 하고 일단 청년이 추천해준 모델을 사다가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새 집은 LNG 공급이 되는 집이었기에, 여태까지 무리없이 사용하고있다.

4.
학교에 들어온 패미리마트와, 학교에 들어올 버거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느날 밤. 다음날의 즐거운 아침식사를 위해 김치보다 삼겹살이 더 많이 들어간 김치찌개를 흡족히 끓이는 동안 청년에게 가스레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일이 떠올랐다. 운 좋게도 자취생활을 겪은 청년을 만났고, 또 그가 자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에 나는 수년간의 시간과 수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배웠을 지혜를 거저 얻었다.

 

4.
그 이마트 지점의 매니저는 자신의 부하 덕분에 내가 수년간 행복하게 김치찌개와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건희는 더더욱 모른다. 아마 내가 다음에 그 이마트를 찾아갔을 때는 한낱 비정규직 파트타임인 그 자리에 그 청년은 다시 있지 않을 것이기에(취직하러 갔겠지) 그 청년에게도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는 영영, 없을 것이다. 그 청년은 나의 향후 수년을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켰음에도, 나 외에는 그 누구도 그 기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결국, 잊혀질 것이다.

 

5.
거대 자본은 대단하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면, 거대 자본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 수 있는, 만들었던, 만들고 있는 수많은 기적을 지워버린다.

 

6.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블로그를 만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20100712 1208

 

다시 읽어보니 음… 좋은 수필이 될 뻔 했는데 참 어줍잖은 비약이 소박한 미학을 해치는 감이 없잖아 있다. 게다가 세번째 다시 읽어보니 글 자체의 짜임에도 크게 문제되는 부분이 있어 좀 오래 고쳤어야 했다. 이놈의 손가락을 내 언젠가 스스로 분지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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