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킵과 로퍼 애니메이션 1화/만화책 1-8권 감상

    ‘스킵과 로퍼’는 2018년 가을부터 일본의 만화 잡지 <애프터 눈>에 연재되어 현재 단행본이 8권까지 나온 만화로, 이번 주 부터는 애니메이션 방영이 시작된 작품이다.

    간간히 재밌게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보기도 했고, 여자친구는 이미 만화책을 한번 읽은 상태였어서 주말 저녁 IPTV 카탈로그를 뒤지다 지나가던 제목을 놓치지 않고 한번 보기로 했는데 고퀄 갓애니여서 깜짝 놀랐다. 당장 리디북스 캐시를 녹여서 책을 전권 사다가 부부가 사이좋게 누워서 단숨에 읽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스킵과 로퍼’의 주인공은 인구 소멸로 쇠락해가는 많은 일본 시골중 하나인, 주부 지방의 이시카와현 (…이라고 해도 지도를 검색해 보기 전까지는 이게 어딘지 싶었음.) 출신의 여학생이다. 장차 동경대에 입학해 행정관료 및 정치인으로 성장해 소멸하는 지역을 재생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학업에 매진하는 성실하고 밝은 학생으로, 무대가 되는 도쿄의 한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새 친구들을 만들고, 인간관계를 배워나가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소위 청춘물 순정만화이다.

    담백하고 정돈된 화풍에 작가의 애정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담겨있다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얼굴에서 느껴진다. 많은 사랑을 받는 만화들이 그렇듯 그림과 이야기의 조화가 좋다는 느낌. 그림만 보고 픽하면 딱 생각한 그대로의 훈훈하고 달콤쌉싸름한 청춘 이야기이다.

    에.. 한편 건강발랄하지만 요령 없는 주인공에게 이것 저것 가르쳐주고, 성장과 앞길을 축복하고 위로하며 같이 울고 웃는, 즉 보호자 어른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는 도쿄에 유학 온 주인공을 맡아주는 고모가 그 입장으로 등장한다. 일단 밥도 해주시고..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솜씨를 가망 없는 주인공의 코디네이션을 코칭하는 데 발휘한다거나, 이런 저런 상담으로 주인공이 괴로워할 때 지지해주고, 기뻐할 때 박수쳐주는 분이다.

    근데 이렇게, 주인공처럼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빛나는 꿈을 들고, 많은 친구들과 우정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행운이 고모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녀의 고향에는 MTF 트랜스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고민을 나누거나, 결정을 지지해 줄 친구도 가족도 없었고, 특기이자 자질인 스타일링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 살 자리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주인공을 보며 이따금 느꼈던 뭐라 하기 힘든 괴로운 마음 잠깐 상상해보시오.

    생각해보면 되게 당연히 있을 아픔인데 만화에서 고모가 연인에게 저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의 말을 듣는 에피소드가 나오기 전까지 고모가 트랜스여성이라는걸 알고 오엥 글쿠나 하고 넘어가기나 바쁘지 어디 떠올리기나 했습니까 시스들이여 반성합시다…가 아니고, 뭐 일본 순정만화에 퀴어이야기 나오는건 신기한 일이 아니니까 이게 얘깃거린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퀴어얘기가 아니라 청춘만화라는 장르에 들어가면서 시스성별 독자들과도 연결되어 보편성을 얻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음.

    무슨 말이냐. 우리의 학창시절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사실 많단 말입니다. 내가 못나서, 가정환경이 박복해서, 그냥 운이 없어서… 내가 상처를 준 동료가 아직 기억 한켜에서 울고 있다던지 하는 죄의식일수도 있고. 보통 상쾌한 청춘물을 순수하게 즐기기에는 약간 씁쓸한 맛이 입에 도는 성인 독자들이 사실 다수 아니겠냐구. 따라서 조카를 부드럽게 보듬는 고모가 떠올리는 아픔이 무공해 청춘 만화를 읽으며 독자로서 가끔 느끼는 그 부조리한 억하심정과 어떤 면에서 닿으며 울림이 있었달까. 퀴어 고민이 주변적인 고민이라면 고민이겠지만, 청춘물 만화에 이렇게 배치되니까 또 보편적으로 읽히게 되어서 좀 생각해보게 됐음.

    다시 애니메이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아하니 대체로 원작 1화의 호흡을 그대로 잘 옮겼다. 한편, 추후 등장인물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등교 준비를 하는 짧은 몽타주라던가, 학생 선서를 마치고 밀려오는 구토감에 천천히/다급히 달려가는 장면처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싶은 장면들을 중간중간 채워서 재밌게 잘 만들어진 1화였다. 아마 1시즌을 1학년에서 마치고, 2시즌을 2학년, 만화가 완결된 후 시즌 3을 3학년편으로 내는 구성이 아닐까 아무렇게나 생각해 봄.

    ‘스킵과 로퍼’ 시청하기 직전까지는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을 보고 있었는데, ‘스킵과 로퍼’ 오프닝의 댄스신이라던가 (아마도 스케치업? 의 힘을 입은) 정교하고 생생한 거리, 기차역, 교실 같은 배경이라던가.. 같은 학원 청춘물이다보니 뭔가 직접적으로 애니메이션 기술 발전이 대비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재밌었음.

  • The Mandalorian (만달로리안) 시즌 3 초반부 감상

    얼마 전(미국에서는 3월 1일, 우리나라에서는 3월 8일)부터 디즈니 플러스의 스타워즈 드라마 시리즈 만달로리안 세 번째 시즌이 차례로 공개되고 있다.

    아내가 보는 진도에 맞춰서 보다보니 좀 시즌 1-2의 서너 에피소드쯤 건너 뛰면서 봤기도 하고 무슨 내용인지 소상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만, 그렇게 자세히 이전 이야기를 챙기지 않아도 이야기를 못 따라갈만하진 않은 듯하다. 대충 꼬마 그로구를 줍게 된 만달로리안 전사 딘 자린이 이런 저런 모험을 하는 이야기라는 것만 알면 충분할 것.

    한편 이 와중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얘기가 바로 묘하고 신비로운 만달로어인들의 계율과 전통이다. 평생 마스크를 쓰고 뭔 일이 벌어져도 호들갑 안떨고 시큰둥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대응하는 그들, 고향을 잃고 우주를 떠돌아다는 기구하고 기묘한 그들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시즌 2 말미쯤에서 주인공 딘 자린은 불가피하게 헬멧을 남 앞에서 벗어서 만달로어의 규율을 깼기에 공동체로부터 추방되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오래전 은하제국에 쳐박살난 그들의 고향 행성을 찾아가 생명의 샘에서 죄를 씻어야 한다는 퀘스트를 이루는 과정이 시즌 3 초반부 세 편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추구하는 여정에서, 딘 자린은 일전에는 만달로어인의 지도자였지만, 모성으로부터 쫓겨난 뒤로 군벌을 이끌던 보-카탄 크리즈와 함께 하게 된다. 보-카탄 크리즈는 자기 레거시가 제국에 망한 충격이었는지 뭔지 만달로어의 규율을 하찮게 여기며 헬멧을 벗은채 다른 만달로어인들과는 다른 계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생 만달로어 별에 발 붙여본 적 없으나 만달로어 규율을 금욕적으로 지키며 살던 근본없는 딘 자린과, 만달로어 별에서 태어나 그곳을 주름잡던 가문 출신이었지만 별이 망한 뒤로는 규율이고 뭐고 근본없이 살던 보-카탄이 함께 만달로어의 근본을 찾아나서는 근본투어를 떠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뭐 굳이 사서 고생을 하냐는 식으로 빈정대던 보-카탄도 막상 근본을 목도하고 자신들의 역사가 동화나 신화가 아니라 한때 살아있던 역사였다는걸 깨닫고, 웬지 개운해 하는게 인상적이었다.

    최근 모친이 컨디션이 안좋아서 큰 병원에 찾아갔다 한다. 자세한 검사를 한 뒤에는 암과 같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은 아니고 약으로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기에 안도했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간 가족이 꽤 걱정을 했다. 아버지의 경우엔 안좋은 얘기를 듣게 되면 지금 손녀딸 양육하는거 돕는 사정이고 뭐고 지금 집을 다 정리하고 시골에 들어가 어머니와 나물이나 뜯으며 살아야겠다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시골이 뭐길래. 그게 부모세대의 고향, 즉 ‘근본’인건가ㅋ 싶었다. 하긴 두분 다 수원 출신인데, 지금처럼 도시가 서기 전엔 논에 밭에 과수원인 동네 사람이었다. 몸이 멀리 이동한건 아니지만 그자리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채 계속 타향에 사는 사람인 것인가.

    이렇듯 스타워즈 드라마를 보다가 잠시 사람에게 근본이란 무엇인가 그런 잡다한 생각을 잠깐 한 기록을 이렇게 남김.

  • Horizon Zero Dawn 호라이즌 제로 던

    호라이즌 제로 던은 2017년 2월 28일에 플레이스테이션 4용으로 출시된 오픈 월드 액션/롤플레잉 게임입니다. 대형 독점 게임인 킬존과 같은 게임들을 공급해온 게릴라 게임즈에서 제작했으며, 갓 오브 워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소니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게임입니다.

    호라이즌은 위쳐3, 엘더 스크롤과 같이 드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오픈 월드 게임이기도 하며, 몬스터 헌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약점 공략 및 부위 파괴 시스템을 갖춘 사냥 게임이기도 합니다. 한편 화끈한 전투를 몇차례 치르는 여행을 거쳐 도착한 곳에서는 언차티드, 어새신 크리드 시리즈를 를 떠올리게 하는 벽 매달리기와 퍼즐, 그리고 로어1 가 가득한 유적 탐사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요새 AAA 게임인 거죠. 저는 전투와 성장, 아이템 수집 요소의 비중을 따졌을 때 호라이즌은 TPS 액션 게임 정도로 생각하는데, 요새는 ARPG 게임으로 분류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게임 이야기를 해봅시다. 호라이즌의 세계는, 어째서인지 들판에는 기계로봇 공룡과 맹수가 돌아다니며 레이저를 쏘는 한편 인류는 가죽옷을 걸친 부족사회로 돌아간 오묘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문명이 초기화된 것일까요?

    한편, 에일로이는 어머니 없이 태어나 노라 부족이 성지로 여기는 기계 유적 앞에서 발견된 갓난아이였다고 합니다. 모계사회인 노라 부족에게 어미의 축복이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참람된 일이었기에 에일로이는 미신적인 부족민들로부터 박해 받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족장인 올-마더 티어사는 기계 성지에서 발견된 그녀가 여신이 점지해주신 큰 인물이라고 믿었기에, 에일로이의 성인 증명 의식에 일어난 외부인 습격사건의 조사를 핑계삼아 에일로이를 부족의 ‘추구자’ 로서 지명하여 노라족의 금기에 구애 받지 않고 세계를 탐색하도록 보냈습니다.

    이렇게 마을 밖으로 떠난 에일로이는 사건의 내막, 그리고 미스테리한 세계와 출생 비밀을 풀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한편, 여행에서 마주치는 기계 괴물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플레이어는 상황에 맞춰 여러 가지 무기 및 원소(화염, 냉각, 부식, 부품 파괴 등)를 선택하고 전투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원하는 공격 옵션을 강력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무기를 강화하고, 강화된 무기를 통해 적을 효율적으로 사냥하여 또 강화 재료를 얻어 다음 여행을 대비하고, 새로운 적을 만나 기존 전략이 통하지 않을때 다시 새로운 전략을 탐색하는 과정이 주요한 게임 메카닉스입니다..

    에일로이는 활, 창, 슬링, 트랩 등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여 기계 생물들과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은 불, 전기, 얼음과 같은 다양한 원소 속성을 갖고 있는데, 기계 생물들은 각각 원소에 대한 약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 기계 생물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원소 속성을 활용하여 전투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전투 전략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기계 생물들의 강력한 능력과 체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약점을 찾아내고 이를 공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무기중에는 데미지에 특화된 화살과 부위 파괴에 특화된 화살이 나뉘어있는데, 예를 들어, 기계 괴물의 안테나를 기계 생물의 허리에 달린 드론 사출장치를 떼어내어 적을 약화시킨 뒤 데미지 화살로 교체하여 쓰러트려 나갈 필요가 종종 있습니다. 에일로이에게 돌진하는 적을 구르기로 회피할 수도 있지만, 활로 다리를 맞춰 자빠트리는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구요.

    이러한 부위 파괴/공격 요소는 원소 속성 요소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몸체는 냉기에 저항이 있지만 부품 파괴 화살로 가슴 장갑을 까내고 그 안에 장착된 냉동 탱크를 터트리면 결국 얼어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세심하게 전투에 임해야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무기가 전반적으로 덜 강화된 시점에 상대하기 버거운 적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때는 트랩을 잔뜩 설치하여 기계 생물들을 덫에 빠뜨려 데미지와 상태이상을 가한 뒤 전투에 임하면 생각 외로 쉽게 난관을 헤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사용 가능한 기술과 무기, 탄환으로 현재 임한 적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이따금은 약한 초식형 기계로부터 부품을 파밍하러 갔더니 불을 뿜는 육상형 괴물이 가까이 있어 내게 돌진한다든가, 그 적까지 회복약을 다 소모해가며 해치웠더니 하늘에서 기계 새가 날아와 냉각수를 뿌려대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고난이 연속해서 오는 경우가 몇번 있었는데, 이런 순간순간을 기지로 돌파하는 감각이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이외에도 적들에게 내분을 일으키는 정신공격(?)을 가하는 속성이 있다든가, 각 원소가 유발하는 상태이상이 달라서 쓰임새가 다르다든가 하는 얘기가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자원 파밍과 업그레이드가 모두 끝난 후반 시점에는 결국 손에 익고 효율이 제일 높은 한두 가지 무기만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창을 활용한 근접 공격이 초반을 지나고 나면 쓸모가 급감하는 점도, 활로 낑낑거리며 조준하기보단 시원하게 두드려 패는걸 선호하는 경우엔 흥미를 잃게 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게임이 유도하는 대로 내 인벤토리 상황과 강화 상태, 적의 종류와 특성을 염두해서 빠르게 짱구를 굴리는 감각이 재밌는 사냥 게임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원래는 관심이 안가는 게임이었는데 PSVR2 사면서 같이 나오는 대형 게임이 호라이즌 프랜차이즈이길래 빨리 메인퀘스트만 깨야겠다고 시작했다가 푹 빠져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생기없는 페이셜 애니메이션, 유년기 에일로이의 뻣뻣한 모습…. 게임중 대화모드로 들어갈 때 모델링이 새로 배치되면서 헤어나 의복 피직스 효과가 초기화되며 0.1초간 경련하는 캐릭터들… 같은 자잘한 모습때문에 약간 만듦새에 의구심을 가졌고, 좋다는 자연경관과 그래픽도 그냥 눈앞이 어지러워서 걍 젤다처럼 단순한 화면이 좋은거 아닌가 ㅡㅡ 하는 식으로 삐딱하게 보였는데, 어느새 감기더라구요. 크레토스랑 또 다른 방식으로 쿨하고 잘난 에일로이에게도 정이 들게 됐구요. 재밌는 게임이었습니다. 지금은 후속작들을 진행하는 중이네요. 2023년 3월 현재 Playstation Plus 카탈로그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해당 서비스를 통해 즐기셔도 좋고, 중고 디스크도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또한 PC포팅도 된 게임이라 스팀에 올라와있으니 PC로 즐기실수도 있습니다.

    1. 게임 내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게임 내 정치, 역사, 사건 등등을 로어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읽다 보면 머리속에 세계관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희로애락이 전달돼서 좋긴 한데… 아무래도 신나게 게임하는 와중에 멈춰서 읽는게 페이스가 흐트러질 때도 있고 그렇기도 하죠 []
  •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현재 12화로 시즌 1을 마치고 시즌2를 준비하며 휴방중인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데다 매주 유튜브 공식 계정으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최신화를 공개하였기에 간만에 초기 붐 부터 관심을 가지고/접근하기 굉장히 수월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여자친구는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거실에서 같이 볼 수 밖에 없어서.. 거의 매화를 함께 다 봤다.

    1979년 <기동전사 건담> 이래 40년 넘게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스무편 정도 만들어지는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건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그리고 작중의 다른 여성 캐릭터와 주인공이 약혼 관계(queerbate?)를 구성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작중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배경이 여타 시리즈처럼 전장이 아니라 학교생활이라는 점((다 본건 아니지만 건담W 주인공들도 학교를 다니긴 했던 것 같다만..학교에서 건담을 탔던 건 아니니까)) 등등 온갖 떡밥요소에 제대로 낚여서 보게 되었다.

    12화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향후 애니메이션의 전개가 두 소녀의 로맨스를 응원하던 시청자들에게 깊은 쓴맛과 여운을 남기게 될지, 둘만의 행복을 다시금 쌓아올리는 모습을 보여줄지 어느쪽일지 너무 궁금하다.

    매화 약간 자극적인 반전이나 충격적인 장면으로 클리프행어를 만드는 식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려 왔고 그 매운맛이 마지막에 폭발했는데, 이덕에 다양한 연령의 시청자들이 간만에 건담 이야기를 떠드는 (평론가 djuna01이 처음으로 시청한 건담이기도 했다고 함)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프라모델도 엄청 잘팔렸던것 같다. 다만 이렇게 내용이 빠르게 휙휙 전개되는 것이 시간이 지나고 완결이 된 다음 긴 호흡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 완성도 있는 좋은 이야기로 엮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 것 같다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동시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 점과 공정한 신체다양성 묘사가 눈에 띄었다. 굳이 이런걸 꼽아 호평하는건 진보적 미감을 갖췄다는 선민의식을 괜히 드러내려는 것 같아 저어되지만,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일단 기록해 둠. 건담이란 프렌차이즈가 어떤 상품인지 일본에서 시작했어도 오랫동안 세계 대상으로 장사해온 회사는 조금 감각이 다른 것일까 하고 생각해봄.

  • Playstation 이야기

    PSVR2가 2주 뒤에 도착한다고 하니 슬슬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해서 예전에 재밌게 했던 VR게임을 다시 해보거나, 사두기만 하고 끝까지 못 해본 VR게임을 다시 해보고 있다. 그래서 플스 게임 라이브러리를 돌아보다가 The playroom 이라는 게임을 보았다.

    한 스트리머의 the playroom 플레이 영상. 공식 트레일러 영상이 더 깔끔하겠지만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대신 가져옴ㅋㅋ

    The Playroom이 나온 시점은 2013년, PS4 발매주기의 초반부 쯤으로, PS3과 엑스박스 360이 Move와 키넥트로 모션인식 대결을 펼쳤다가 PS3쪽이 심대하게 털린 바로 다음이기도 하고, 잔뜩 보급된 스마트폰의 GPS, 모션센서 및 카메라를 활용한 AR(증강현실)의 부흥이 일각에서 제안되던 시점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대한 소니의 응답이 PS3시절에도 사용한 무브봉이나 PS4 듀얼쇼크4에 달린 라이트바, 또 그 빛을 정교하게 추적할 수 있는 PS4의 입체시 카메라(렌즈가 두개 달려서 입체적인 인식을 함)를 활용한 AR이었 것 같다. 그리고 the Playroom은 PS4의 카메라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데모를 보여준 게임이었다.

    돌이켜보면 소니가 잘 준비해둔 AR기능은 결국 아무도 안썼다. (….) 사실 데모를 보면 충분히 감탄할만큼 신기하고 재밌었다. 어린아이들은 아주 매료되었을 것이고, 나같이 철 덜 든 아저씨나 아줌마들도 한시간 정도는 충분히 흥을 낼 수 있을만큼 잘 만들어진 기능이었던 것 같다. 근데도.. 뭐 어쩌겠음. 더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혁신은 고도로 다듬은 그래픽이나 스크립트의 깊이나 조작성이나 레벨디자인이나… 뭐 그런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AR이 잘 끼어들 자리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AR로 승리한 게임은 게임 역사상 포켓몬 GO 정도였다.

    닌텐도가 좀 고집불퉁으로 지 하고싶은 방향성으로(듀얼스크린 휴대기기, 모션인식 게임기, 3D화면 게임기 등등) 게임기를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해볼 수 있는 뭔가들을 계속 한다면(고스펙 하드웨어, 클라우드 게이밍) 소니는 좀 더 전통적인 가전기기 회사의 DNA가 있는듯이 보인달까, 전자업계에 유행하는 개념들을 줏어서 그걸 잘 구현해보는 방식으로 게임기를 만드는 느낌이 있다. PS2-3시절 ‘유비쿼터스’ 유행할때 플스 마케팅에 잔뜩 사용했던 것도 그렇고, AR도 다들 얘기하니까 진심투구 한방 보여주고… VR 메타버스 얘기 나오니까 거기도 덩달아 뭐 하나 보여준다고 기계 만들고…

    이렇듯 플레이스테이션의 설계 과정에서는 늘 전자업계가 그리는 미래상, 이상을 구현하려는 방향성이 느껴진다. 이 성향에서 워크맨이랑 브라비아 만들던 짬밥으로 세계의 전자업계를 선도하던 근본,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는 모종의 프라이드와 사명감이 비치는 것 같다고 새삼 감탄하였기에 이 감상을 포스팅으로 남겨 보았음.